복지관을 코로나19로부터 지킨 우리의 모습 전 세계가 코로나19로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코로나 확진자 수가 3만명 이상 누적되며 거리두기가 일상이 되어버린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복지관의 서비스도 정상적으로 제공되지 못했습니다. 대면사업은 거의 올스톱되었습니다. 서울시의 코로나 대응 지침에 따라 2월부터 휴관이 적용되었고, 코로나 상황에 따라 개관과 휴관을 반복했습니다. 코로나로 인한 타격은 복지관을 이용하는 시각장애인에게 더욱 컸습니다. 평생교육, 문화, 여가, 건강 등 시각장애인을 위한 각종 서비스를 복지관을 통해 이용하며 건강하고 즐거운 삶을 영위해 왔기에 상실감이 클 수밖에 없었습니다. 답답한 하루를 보내는 시각장애인을 두고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코로나의 강렬한 위세 속에서도 비대면 서비스, 1:1 서비스, 찾아가는 서비스, 소그룹 서비스 등 다양한 대안 서비스를 만들어가며 시각장애인의 고통이 최소화되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해 오고 있습니다. 또한, 코로나 방역 지침에 따른 시스템을 구비하여 시각장애인과 직원들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만반의 대비도 갖추었습니다. 열 체크를 위해 열화상카메라를 배치하고, 식당에는 비말을 막는 칸막이를 설치하였습니다. 복지관의 모든 곳은 매일 소독하고 방역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일대일 및 소그룹 서비스 시에는 이용자 간 거리를 확보하고 운영합니다. 코로나가 언제 종식될는지 모르겠으나, 복지관은 이에 굴하지 않고 시각장애인의 복지를 위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을 하겠습니다. 하루속히 시각장애인들이 이전처럼 복지관에서 원하는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시간이 도래하기를 희망합니다. 시각장애인을 차별하는 은행 은행이 없는 세상을 상상해본 적이 있는가? 대출, 예금, 적금 등 생활에 중요한 부분을 해결하는 많은 일을 도와주고 있는 곳이 은행이다. 그런데 시각장애인에게는 상처를 주는 곳이기도 하다. 시각장애인은 대출이 어렵다고 한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경제적인 부분이 어려워져서 대출을 받으러 갔더니, 서류에 있는 이름과 주소, 전화번호 등을 모두 자필로 작성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한다. 믿을만한 사람이 옆에서 이름을 어디에 쓰고 서명을 하는지 알려주는 것조차 불법이라고 말한다. 또한, 안마업을 유흥업으로 생각하여 금리가 높은 금융권에서 대출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세금을 꼬박꼬박 내는 엄연한 자영업자인데도 말이다. 비슷한 사례로 시각장애인 신용카드 발급을 거부한 일도 있었다. 카드 신청 시, 대출과 같이 서류작성에 문제가 생겨서, 시각장애인이라 서명만 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에 은행직원은 서류에 모든 부분을 기재해야 한다는 반복적인 대답과 함께 장애인차별 발언을 했다. ‘글씨가 안 보이는 데 사용을 어떻게 하냐, 내역은 어떻게 확인할 것이냐?’고 했다고 한다. 굉장히 충격적이다. 2018년 금융위원회는 시각장애인이 은행 업무를 봐야할 때 자필서명 대신 녹취, 녹화의 대체 수단을 사용할 수 있도록 개선안을 내놨다. 하지만, 통과되지 않았다. 확인 결과 이번에도 발의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래도 시간은 흐르고, 인식도 변하고 있다. 최근에는 금융거래 편의성을 위해 점자 약관을 제공한 은행도 있다. 또, 기존의 음성 OTP의 단점이었던, 빠른 배터리 소진과 교체 불가능, 음성 관련 문제, 내구성 개선을 고쳐 나오기도 하였다. 약간의 배려가 누군가에게는 큰 편의로 다가온다는 것을 모두가 알게 된다면 더 좋은 세상이 되지 않을까. 끊임없이 자신의 꿈을 향해가는 공무원 천성은 씨 전국에 장애인 공무원은 2018년 기준으로 4,967명입니다. 그중 시각장애인 공무원은 591명입니다. 고용 안정과 좋은 근로환경으로 인해 공무원을 준비하는 시각장애인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시각장애인 공무원들 중, 서울의 종로구청에서 근무하는 천성은 씨(남, 29세, 전맹)을 만나봤습니다. 대개 중도실명이 되면 충격과 좌절로 인해 사회에 다시 나오기까지 소요기간이 평균 10년이나 된다고 합니다. 천성은 씨도 18살에 교통사고로 실명이 된 후 좌절하여 집 밖을 나서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다시는 사용할 일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입던 옷이며 신발이며 자신의 물품을 친구들에게 줘버렸습니다. 그렇게 1년여 동안 집안에 갇힌 듯 살다가 문득 허송세월을 보내던 자신이 답답해졌습니다. 뭐라도 해봐야겠다는 생각에 본 복지관에 문을 두드렸고, 상담 후 기초재활훈련을 받았습니다. 당시 그는 어머니와 단 둘이 생활하였고, 기초생활수급자로 가정형편이 좋지 않았습니다. 돈을 벌어야했습니다. 재활훈련을 수료하자마자 텔레마케터를 시작했습니다. 안마를 배우면 더 많은 수입을 얻을 수 있다는 주변의 조언에 안마를 배웠지만, 안마업에 종사해보니 적성에 맞지 않았습니다. 안마를 그만두고 ‘엔비전스’라는 회사에 취업을 했습니다. ‘어둠 속의 대화’라는 주제로 장애인식개선사업을 하는 사회적 기업이었습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시각장애인의 안내에 따라 이동하며 시각장애인의 불편함을 체험하게 하는 사업을 하는 곳입니다. 일상에서는 항상 도움만 받는 입장이었는데, 그 곳에서는 도움을 주는 주체가 될 수 있었습니다. 일에는 만족했지만 보다 안정적인 평생직장을 갈망하던 그는, 공무원이 되기로 맘을 정하고 도전 끝에 종로구청에 임용되는 기쁨을 얻었습니다. 천성은 씨는 구청 자원봉사센터에서 봉사처와 자원봉사자를 연계, 관리하는 업무를 맡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팀에서 알아주고 시행되었을 때, 큰 행복을 느꼈다고 합니다. 또, 자신의 책임 하에 업무를 수행하면서 자존감이 커졌고, 새로운 소망도 움트고 있습니다. 첫 번째 소망은 장애인식개선 강사를 하는 것입니다. 본인이 장애인 당사자이기에 비장애인 강사들보다 많은 것을 전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고 합니다.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개선해야 할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많다고 느꼈기 때문이죠. 어느 날은 에스컬레이터를 거꾸로 타고 있는데 아무도 도와주지 않아서 큰 사고가 날 뻔했습니다. 이런 일을 겪으면서 더욱 확고해졌다고 합니다. 퇴직 후에는 자그마한 와인 바를 차리는 것이 최종 소망이라고 합니다. 그의 와인 바에서 소소한 이야기를 하며 와인 한잔 하는 날이 온다면, 그 날은 행복한 하루가 될 것 같습니다. 코로나19에도 멈출 수 없다! 비대면으로 전환된 서비스 코로나19로 인해 복지관 방문이 어려워졌습니다. 기존 방식으로는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없어서 소규모 그룹 운영, 온라인 서비스 도입, 1:1 서비스, 찾아가는 서비스 등으로 전환하며 대응을 하고 있습니다. 집단으로 대면하던 서비스는 온라인이나 소규모그룹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점자훈련은 전화수업으로 진행되었고, 일본어학습동아리도 온라인에서 모이게 되었습니다. 시각장애인 청소년들의 자조모임인 ‘몽땅플레이’는 집에서 DIY키트 미션을 완수해서 밴드 어플로 친구들과 공유하는 방식으로 운영되었습니다. 다양한 평생교육 프로그램들은 영상/음성 강의로 제작해 메일과 카카오톡으로 전달하기도 하고, 소수인원만이 참석하는 소규모교육으로 진행되었습니다. MBC성우들이 맹학교에 찾아가는 동화구연과 성인 대상의 독서문화프로그램 또한 영상 강의로 대체하였습니다. 강사가 시각장애 청소년들이 모여 피아노, 드럼, 기타연주로 합주를 하던 청소년그룹음악활동은 강사가 개별적으로 집에 방문하여 일대일로 강습을 하는 형태로 진행되었습니다. 합주를 하지 못해서 아쉽지만, 연주 연습은 계속하기에 코로나가 진정되면 아름다운 합주가 가능하리라 생각됩니다. 이밖에도 정보화교육, 보행훈련 등 다수의 프로그램들이 찾아가는 서비스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노래교실, 수영교실, 댄스교실 등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한 시각장애인 이용자는 코로나로 인한 현 상황에 큰 아쉬움을 드러냈습니다. “복지관에 못 와서 좋은 것은 가족과 시간을 좀 더 보낼 수 있다는 점 외에는 다 안 좋아요. 좋아하는 프로그램에 참여도 못하고, 친한 동료들도 못 만나잖아요. 속상할 뿐이에요. 온라인으로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지만, 복지관에 와서 대면하며 이용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죠. 만족도 차이가 큽니다.” 아무리 대체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고 해도 기존의 서비스와는 질적으로 다를 것입니다. 어서 코로나19가 사라져 이용자분들이 맘껏 서비스를 즐기실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랍니다. 장애인의 이동 편의 위해 노력하는 우리 동네 버스회사 시각장애인이 지하철, 버스, 택시 등 대중교통을 혼자 이용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지하철은 승하차 위치가 일정하고, 점자유도블럭도 잘 설치되어 있어 그나마 많이 이용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버스는 상황이 다릅니다. 버스 번호를 인식하기가 어렵고, 멈추는 위치도 일정하지 않아 이용에 어려움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시각장애인이 버스를 원활히 이용하기 위해서는 버스 승하차 훈련이 필요합니다. 우리 복지관은 1982년부터 중도시각장애인의 재활훈련 과정에 버스 승하차 훈련을 도입했습니다. 훈련을 위해선 버스회사의 도움이 필요했는데, 지역에 위치한 ‘서울승합’이라는 버스회사가 20년 넘게 훈련할 버스를 제공하는 등 큰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동사는 설립된 지 71년 되었고, 하루에 운행되는 버스는 160대 정도 되는 큰 회사입니다. 서울승합의 김원선 운영관리부장은 “저희 회사는 버스기사들을 대상으로 1년에 4차례 장애인식개선교육을 실시하고 있다”면서, “버스기사들에게 장애인 승객의 안전에 유의하고 불편함 없이 이용할 수 있도록 친절하게 서비스 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앞으로도 도움을 계속 주고 싶다는 메시지도 함께 전했습니다. 버스 승하차 훈련은 차고지에 정차해있는 버스에서 오리엔테이션을 한 후 실제 운행하는 버스를 승하차하는 순으로 진행합니다. 오리엔테이션에서는 버스에 승차하기, 버스카드단말기 이용하기, 좌석까지 안전하게 착석하기, 안전하게 하차하기 등을 연습합니다. 어느 정도 숙달되면 실제로 운행하는 버스에서 훈련을 실시합니다. 버스정류장에서 버스에 탑승한 후 목적지에서 하차하는 훈련을 반복하고, 최종 단계로 혼자서 버스 이용이 가능하도록 훈련합니다. 이러한 훈련과정을 거치면 시각장애인들은 자신감을 가지고 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훈련만으로 버스 이용 불편이 모두 해소될 수는 없습니다. 다행이도 버스정보시스템이 있어 이를 활용하면 불편함을 줄일 수 있습니다. 장애인이 버스회사에 탑승하고자 하는 버스노선과 정류장의 위치를 전화나 문자를 통해 알리면, 정류장에서 가장 인접해 운행하고 있는 버스에 해당 정보가 전달됩니다. 버스기사는 정류장에 도착 전 승객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장애인 승객의 탑승을 돕게 되는 시스템입니다. 비장애인에게는 사소한 일상들이 장애인에게는 장벽이 되기도 합니다. 지역사회와 주민의 관심과 배려가 있다면 장벽은 극복 가능합니다. ‘서울승합’의 아름다운 배려와 나눔은 시각장애인의 삶을 폭넓게 만들어주는 씨앗입니다. 서울승합에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이료도서 녹음 전문 김용춘 봉사자 과거와 달리 요즘은 다양한 직종에서 일하고 있는 시각장애인들이 많아졌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시각장애인의 주된 직업은 이료업이라고 일컫는 안마와 침술입니다. 그래서 안마, 침술 등의 한의학 관련 녹음도서에 대한 욕구가 많은 편입니다. 한의학 관련 서적은 한자가 많이 포함되어 낭독하기가 까다롭습니다. 이로 인해 대부분의 녹음봉사자들이 기피하여 녹음도서 제작에 차질을 겪곤 합니다. 남들이 하지 않는 어려운 일을 자원하여 낭독해 온 봉사자가 있습니다. 김용춘(여, 80세) 녹음봉사자입니다. 평소 한자에 대한 지식이 높은 편이었지만, 한의학에서 전문용어로 표기된 한자는 그녀에게도 생소합니다. 도서를 녹음하기 전에 먼저 옥편으로 모르는 한자를 일일이 찾아 음과 훈을 도서에 표기해야 합니다. 책 한권 녹음하는 시간이 다른 봉사자들보다 몇 배 이상 소요되는 것이지요. 이처럼 번거럽고 어려운 봉사를 24년이나 하고 있기에 이료업에 종사하는 시각장애인들은 그의 노고에 감사하는 마음을 팬레터로 전해 오기도 합니다. 이러한 그의 헌신을 우리 사회에서도 인정해 주었습니다. 2019년 코오롱에서 사회공헌차원에서 수여하는 ‘우정선행상’ 본상을 수상한 것입니다. 부상으로 주어진 상금 중 많은 금액을 시각장애인 학생들의 장학금으로 후원하기도 하였습니다. “저보다 더 크게 헌신하신 봉사자들이 많으신데, 제가 상을 받게 되어 너무나 미안하고 민망할 뿐입니다.”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해 복지관에서 녹음봉사를 할 수 없었습니다. 대신, 코로나를 함께 이겨내자는 의미로 손으로 뜬 수세미를 100개 이상 만들어 시각장애인에게 전하기도 했습니다. 그 누구도 하지 않으려고 하는 힘든 봉사를 묵묵하게 해오고, 자신이 가진 것을 아낌없이 나누며 살아온 그의 마음은 푸른 바다만큼 넓어 보입니다. 마지막으로 김용춘 봉사자는 본인의 소망을 이야기해주셨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시각장애인들에게 지금보다 더 많은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좋겠어요. 그들이 어디에 있든지 자신감을 갖고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다 하며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 바람뿐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