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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의 운명까지 품어안은, 그것은 성악 (윤서향)

작성자 점자새소식

작성일 2019-06-14 오후 1:32:34

조회수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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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의 운명까지 품어안은, 그것은 성악 (윤서향)
작성자 점자새소식 작성일 2019-06-14 오후 1:32:34 (조회 : 1626)
나의 운명까지 품어안은, 그것은 성악
 
윤서향(교사)
 
  오늘도 시간은 흐른다. 늘 그렇듯 변함없이... 가벼운 발걸음보다는 긴장감에 싸인 조심스런 발걸음으로 길을 나서 안내견 찬란이에게 정확한 명령과 적절한 칭찬을 섞어 25분 가량 걸으면 출근길은 그저 그렇게 막을 내린다.
  무사히 목적지에 도달하면 조금 안도한다. 고생한 찬란이가 편히 쉴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 주고 나면 그제야 한숨 돌리지만 그것도 잠시뿐. 오전 수업이, 매일 받는 신선한 우유처럼 또는 매일 마주하는 어려운 업무들처럼 그렇게 내 앞에 다가와 있다. 전혀 다른 분위기의 여러 학급과 즐겁게 또는 힘겹게 한 시간 한 시간 수업을 진행하다 보면 시간은 어느새 오후를 향하고, 또 시간을 물처럼 바람처럼 떠나보내면 퇴근이라는 과제가 기다린다. 안전한 공간인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퇴근 시간에도 즐거움보다 긴장감을 가지고 걸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일상이고, 반복적인 일상은 운명이라는 이름표를 달게 되리니. 갈대가 바람결을 따라 눕듯 나 역시 대체로 그런 운명에 순응하지만, 아주 가끔은 포효하며 울부짖는 사자처럼 나의 운명에 저항하고픈 마음이 들 때가 있다. 그런 마음은 마치 폭풍 같아서 한순간 몰아쳐 나를 폐허로 만들지만 시간이 흐르면 어느 정도 잠잠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시각장애인으로 살아가는 한, 그런 마음을 털어내려 분투해도 마치 바닷물로 갈증을 해소하듯 끝내 풀 수 없는 마지막 목마름이 남을 터이다. 특히 요즈음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사소할지 모르나 바로 기상 시간이다. 하고 싶지 않지만 해야만 하는 일들이 눈을 뜨는 데서 시작되기 때문일 것이다.
  수업에 관하여는 또 어떠한가. 의도한 바는 아니나, 6년째 신입생들만을 가르치고 있다. 한 학년을 오래 지도한다는 것은, 학생들에게 영어 교육과정 내에 존재하는 여러 지식과 그 안에 숨겨진 인성 요소들을 어떻게 전달해야 하는지, 아이들을 위하여 어떤 부분을 어느 정도 선까지 이야기해 주어야 아이들 눈높이에 맞출지를 명확히 알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물론 이런 장점 역시 기본 전제를 가진다. 즉, 그날그날 진행한 수업을 스스로 끊임없이 모니터링하고 성찰하며, 생활 지도적인 측면 또한 피드백하여 보완점을 찾고, 그것을 즉시 다음 수업에 적용하는 노력을 꾸준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장점보다 시각장애인 교사로서 겪는 어려움이 더 많다. 우선 매년 신입생들은 나를 처음 보는 아이들이므로 내가 낯설겠지만, 나도 마찬가지이다. 비슷한 목소리를 지닌 아이들도 많을 뿐 아니라 동명이인도 있다. 모든 아이들의 이름과 목소리를 연결해 대략이라도 파악하려면 5월 중순은 넘어가야 한다. 그 후 조금씩 시간이 흐르면서, 나라는 사람을 감당하고 수업에서 호흡을 맞추어 나가기에 신입생들이 아직 어리다는 씁쓸한 생각을 곱씹을 때도 적지 않다. 혹시 처음부터 하면 안 되는 일을 시작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수시로 나를 괴롭힌다. 그런 생각의 이유는 한두 가지로 적을 수 없다. 소리를 내지 않으면서 서로 심한 장난을 하는 아이들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컴퓨터 조작을 돕는 영어 부장들 중에는 마음대로 컴퓨터를 건드리는 학생도 있다. 물론, 나는 그 사실을 거의 알지 못한 채 수업을 진행한다. 그러다 다음날 분명 컴퓨터를 켰음에도 소리가 들리지 않아 확인하면, 그제서야 스피커가 오프 상태임을 발견하고 어제 또 누군가 스피커를 건드렸음을 인지하는 식이다. 그럴 때의 뒤늦은 자괴감도 온전히 나의 것이고. 이따금 내가 아무것도 지시하지 않았는데 마우스 소리가 들려 무엇을 하는지 물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식으로 답하기 때문에 섣부른 지적을 하기도 쉽지 않다. 그 외, 학생들과의 소통 부족, 서로에 대한 이해 결여 등은 나를 힘들게 하는 수많은 일들의 모태가 된다.
  하지만 운명은 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마치 거대한 수레바퀴 같은 것이 운명의 속성인 것을. 마냥 힘들어하며 고통스럽게 지낼 수는 없다. 아이들은 늘 같은 에너지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내가 지치면 결국 나만 힘들다. 냉정해도 현실임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깨달아가는 요즈음이다. 때문에 그런 운명의 그림자 아래서도 나를 숨 쉴 수 있게 해주는 무언가를 찾아 헤맸고, 얼마 전부터 드디어 내 마음의 호흡을 도와줄 작은 창문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창문을 통하여 궁극적으로는 나를 힘들게 하는 운명적인 요소들을 품어 안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생각해보면, 누구에게나 자신이 느끼는 스트레스와 압박감, 분노, 슬픔, 아픔과 기쁨 등 모든 감정으로부터 자유롭게 해줄, 그러면서도 최후에는 너그러워진 마음으로 그것들을 끌어안을 수 있게 도와주는 무엇인가가 꼭 필요하다. 그 어떤 것의 존재 유무가 삶의 질에 얼마만큼 큰 차이를 남기는지 근래에 조금씩 알아가는 중이다.
  반드시 어려움과 고통을 수반하는 운명이라는 것으로부터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되, 최후엔 그것을 수용할 수 있게 도와준 것은 다름 아닌 성악이다. 처음 성악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던 올 초에는 그저 노래를 잘 하는 사람이 되어 내 노래를 듣는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라도 주고 싶다는 바람뿐이었으나, 이제 그 마음은 유튜브 성악발성레슨 강의의 독학으로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발성이 아직 부족하더라도, 노래하는 순간엔 나를 힘들게 하는 여러 일들과 그 일들로 인해 느껴지는 감정들, 누구에게도 표현하지 못하는 깊은 내면 속 내 모습을 잊을 수 있어 좋다. 반대로 그런 내 감정들을 노래에 담으려 노력하기도 한다. 감정을 담아 노래하기 위해서는 노래하는 사람 스스로가 어떠한 감정을 느끼는 것이 먼저이기에 풍부한 감성을 갖는다는 것이 노래하는 데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때도 있다. 성악에는 정말 깊은 매력이 있다. 아마추어 성악도로서 나의 목표는 아무리 바쁘더라도 향후 10년간 성악을 놓지 않고 꾸준히 연습하여 천천히 실력을 쌓는 것이다.
  나는 주어진 보행과 수업과 업무에 늘 최선을 다하고 열심히 임할 것이다. 그 와중에 성악 공부에도 매진할 것이며, 노래를 통하여 내가 느끼는 모든 희로애락을 표현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을 것이다. 나의 감정이 녹아든 노래 한 소절 한 소절이 듣는 이들의 마음에 울림으로 닿아 감동을 안길 그날까지.
 
(2019. 6. 15. 제102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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