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과 그 꽃
서관수(사회복지사)
방 안은 완벽하게 조용했다. 치과용 의자와 비슷한 기다란 베드에 누운 채 눈을 감았다. 긴장한 탓인지 침 넘어가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마침내 의사가 들어왔다. 의사는 찬찬히 얼굴을 살폈다. 이윽고 이상한 기계음과 함께 시술이 시작되었다. 얼굴이 따끔따끔거렸다. 의사의 손은 마치 굴착기 같았다. 이리저리 움직이는 곳마다 피부를 연속적으로 파헤쳐놓는 듯했다. 기분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소리도 소리이거니와 머리카락을 태우는 듯한 냄새가 기분나빴다. 나의 얼굴 ‘점빼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시각장애인인 나로서는, 아무래도 외모에는 둔감하게 살아왔다. 그러기에 딴 사람들의 외모는 물론이거니와 나 자신의 외모에 관해서도 무관심 했었다. 특히나 얼굴에 있는 점이나 잡티에 대해서는 태무심 했었다. 근데 어느 날, 친구로부터 바로 이 부분에 대해 지적을 당했던 것이다.
자신이 못 본다고 외모를 소홀히 하는 것은, 타인에 대한 결례이자 무시라는 것이다.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보이든 안 보이든 외모에도 세심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단정함은 기본이고 적극적으로 아름다움을 추구해야 한단다. 나이가 들수록 더욱더 그래야 한단다.
왈가왈부 굳이 반박할 일은 아니었기에, 나도 얼떨결에 동의하고 말았다. 그러자 눈썹 문신도 해야겠지만 우선 얼굴의 점부터 빼라고 했다. 그러마 대답은 했지만 속으로는 민망하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했다. 이 조그만 얼굴에 그렇게 많은 점들과 잡티들이 살고 있을 줄이야.
막상 진료실에 들어서니 낯섦과 부끄럼으로 얼굴이 상기되었다. ‘괜히 왔나?’ 후회도 됐고, 살짝 떨리기도 했다. 하지만 의사는, 나의 심리 상태 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매우 기계적인 손놀림으로 얼굴 곳곳에 동그라미를 그려나갔다. 여기저기 요기조기... 수많은 동그라미들이 그려졌다. 마치 초등학생 시절 ‘참 잘했어요’를 받는 기분이었다. 채점이 끝나자, 점이 너무 많아 뭉뚱그려 20만 원이면 되겠다는 최종 성적이 나왔다. 기분이 묘했다. 동그라미 개수와 비용 사이의 상관 관계는, 의술과 상술의 미묘한 함수 관계를 보는 듯했다.
세수는 조심조심, 로션은 사르르르, 선크림은 듬뿍듬뿍, 신경 쓸 게 많았다. 여간 불편하지 않았다. 그래도 박보검과 같은 얼굴로 변할 거라는 기대로 견뎌냈다. 어느새 딱지도 떨어지고 다시금 일상으로 돌아왔다. 의식적으로 약간 고개를 쳐들고서 다녔다. 그럼에도 만나는 사람 그 누구도 나의 변화를 알아주지 않았다. 약간 서운한 마음이 들기는 했으나, 나 역시도 금세 무덤덤해졌다. 그렇게 나의 ‘점빼기’는 잊혀지는 듯했다.
그런데 새삼 ‘점빼기’가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그 친구를 다시 만났을 때였다. 식사 내내 친구는 나의 변신에 대해서 일언반구도 없었다. 하마하마 기다렸건만, 생뚱맞은 얘기들만 늘어놓을 뿐이었다.
“나 뭐 달라진 거 없어?”
결국 내가 생색을 냈고 그제서야 말끔히 얼굴을 들여다보더니, 박장대소에다 온갖 호들갑을 떨어댔다. 영 딴 사람이 되었느니, 10년은 젊어 보인다느니, 이왕에 눈썹 문신까지 해서 연예계로 진출하라는 둥 너스레를 떨어댔다. 이건 숫제 엎드려 절 받기였다. 언제는 그렇게 목에 핏대를 세우며 ‘점빼기’를 강요하더니, 정작 ‘애프터’에 대해서는 저리도 무심할 수 있을까.
풀꽃 (나태주)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예쁘다
너도 그렇다
그렇다. 자세히 보아야 참모습이 보인다. 휘어진 칫솔모에서 아버지의 처진 어깨와 주름이 보인다. 오래오래 보면 새로워진다. 꽃이 떨어진 자리에서 눈물을 본다. 화장기 없는 아내의 얼굴 너머로 눈부시게 투명한 첫사랑을 알아차린다. 관심만 가지면 모든 것이 귀하다. 뒹구는 낙엽에서 청춘이 샘솟고, 풀벌레의 가냘픈 날갯짓에서 자연의 경이로운 신비가 펼쳐진다. 그것은 관심과 무관심의 차이일 뿐, 본디 못생긴 놈 없고 본디 얄미운 놈도 없었던 것이다.
아름다움을 눈앞에 두고서 아름다움을 찾아 헤매는 것은, ‘빠름’에서 기인된 착시의 부작용이다. 조금만 천천히 살아보자. 조금만 더 여유롭게 주위를 둘러보자.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으랴, 세상 만물이 저마다의 아름다움으로 그득하다. 아스팔트에 고인 빗물에서도 꽃은 피어나고, 얼음구덩이 음지 속에서도 싹은 꿈틀거린다. 어린아이 잠투정이 생명이요, 우리 어머니 팔자타령이 케이팝이다. 내가 꽃이요, 당신이 꽃이요, 세상이 꽃이다.
그 꽃 (고은)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
(2019. 8. 15. 제1031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