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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선물에 관한 농담(이진규)

작성자 점자새소식

작성일 2018-12-14 오후 2:37:47

조회수 2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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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선물에 관한 농담(이진규)
작성자 점자새소식 작성일 2018-12-14 오후 2:37:47 (조회 : 2319)
선물에 관한 농담
이진규
  선물이란 주는 쪽보다 받는 쪽의 엔도르핀 분비량이 증가해서일까? 대부분의 사람은 손을 벌려 받기를 좋아한다. 그런데 나는 어찌 돼먹은 인간이 남에게 주는 것밖에 모른다는 칭찬이 무수한 처지에 있다.
  나를 두고 표현하는 어휘 중에는 현존하는 성자라는 둥, 살아 있는 부처라는 둥 엄청난 칭찬을 하더라만. 그런 칭찬을 세끼 밥처럼 듣고 사는 나는 그때마다 그냥 웃고 만다. 사실과 같거나 다를 때, 얼버무리기 가장 무난한 대답이 웃음이다 싶어서다.
  내가 선물로 애용하는 물품들은 비교적 약소하고 가벼운 느낌을 주지만, 항상 마음을 담뿍 담아 주기에, 나는 그걸 결코 하찮게 여기지 않는다.
  어떤 이는 그런 나를 보고 주로 싸구려에 관심이 높은 사람이라고 낮잡아 말하더라만 그럴 때 나는 이렇게 말해 준다.
  “선물이란 값어치와 무관한 것. 진심이 묻어 있을 때 그 가치가 있다.”
  내가 애용하는 물품을 구체적으로 열거하면 손수건, 양말, 스타킹, 앞치마, 비누, 칫솔 따위들인데, 이 얼마나 심플하고 친숙한 물건들인가.
  어쩌다 받는 대상에 따라 조금 부담스러운 물건에 손을 대려던 적도 있었으나, 결국 실천에 옮기진 못했다. 의사가 나더러 심장 뛰는 일은 절대로 금하라잖아. 게다가 내가 받은 선물은 거의 기억에 없다는 건데, 그러나 이런 경우는 더러 있었지.
  내가 힘 좀 쓰는 자리에 있을 때였을 거야. 나는 단연코 거부의 몸짓을 보였지만, 사람들은 기어이 내 집에다 꾸역꾸역 놓고 가는 거야. 그 품목을 보면 순금 재떨이, 순금 복돼지, 순금 바둑알 따위에다 승용차 롤스로이스 인수권까지 있었던 기억인데, 그동안 내가 베푼 선물에 비하면 사실 되로 주고 트럭으로 받는 격이어서 좀 불편했지. 그때마다 내가 자위하듯 주문처럼 외우던 말이 있었는데, 그건 ‘가는 선물 안 막고 오는 선물 안 막는다’였다.
  또한 개중에는 내가 현찰 좋아하는 걸 어떻게 알았는지 현찰로 보낸 사람도 있더라고. 현찰 좋아하는 건 돈 귀신하고 나밖에 모르는데 말이야.
  그 뒤로 나한테 따라붙은 별명이 몇 가지 있더군. 이를테면 짠돌이, 구두쇠, 수전노, 자린고비 따위가 그거였는데, 나는 그 별명에 대해 극구 부정할 생각은 없다. 사실과 대체로 일치하니까.
  그럼 예까지는 심심풀이 땅콩으로 치고 이제부터는 진실만을 고백하기로 하지. 내가 받은 선물 가운데 가장 아끼는 물건이 하나 있기는 있는데, 그 얘기를 꺼내자면 아주 먼 옛날로 돌아가야 해.
  대부분의 사람은 전생이나 환생의 기억을 말끔히 지우고 살더라만, 억겁으로 이어지는 윤회의 매 순간을 샅샅이 기억하는 나는 괴특한 존재. 내가 살아본 수많은 생애 중에 어느 유년기에 잠시 머물렀던 시대를 일컬어 사람들은 석기시대라고도 부르더군.
  산과 들에는 온갖 짐승들과 도깨비들이 우글거리고, 금시조가 창공의 제왕으로서 매일 먹는 주식이 용이라고 허풍을 치고, 시조새가 조류의 초대조상이라고 거드름을 떨고, 땅에서는 공룡이 육생의 왕초라고 으스대며 천하를 호령하던 시절, 우리는 땅속 깊은 움집에서 정말 거러지처럼 살고 있었어. 사는 꼬라지가 하도 더러워서 아버지한테 내가 물어봤어.
  “우리 원시인 맞지유?”
  “무식하게 원시인이 뭐냐? 지구별 초대개척단이지.”
  그나마 돌 도구를 만들어 쓸 줄 알았기에, 이만하면 현대인이라고 여기며 살았어. 달력이 없었기에, 나이도 생일도 당연히 몰랐지. 아버지가 어쩌다 잡아 오는 곰 같은 큰 짐승이 곧 생일선물이었고, 그런 날이 곧 명절이었지. 그런 날이면 아버지가 말씀하셨어.
  “이번 곰 가죽은 우리 멍석이 장가들 때 혼례복으로 써라.”
  “이번 너구리 가죽은 달빛카니발 때 우리 더덕이 드레스로 입어라.”
  그 밖에도 아버지는 별난 짐승을 다 잡아 오셨어. 전갈, 스컹크, 왕구렁이까지 잡아 오셨지. 그렇게 귀한 보약을 매일 밥처럼 먹고 산 덕분에 내 심장이 여태 작동하고 있지 않겠어?
  당시 최고의 선물 품목은 외발도깨비의 털로 짠 도포였는데, 나는 그보다 도깨비를 잡으면 덤으로 따라오던 도깨비방망이에 더 욕심이 나더군. 동당동당 두드리기만 하면 원하는 뭐든지 쏟아지던 그 보물 방망이, 도깨비한테 곱게 보여서 그거 하나만 선물로 얻으면 세상 어느 누구도 안 부러웠지. 어느 날 그 방망이 가진 사람을 불러놓고 임금님이 그랬대.
  “그 방망이 날 주고 임금님 네가 해라.”
  그러자 그 대답이 이랬대.
  “그건 내 쪽이 엄칭 밑지는디유.”
  그러면 끝으로 내가 받은 선물 중에 가장 아끼는 선물을 공개해야겠군. 내 나이 들어 단군시로 유학 갈 때, 아버지가 주신 선물 하나가 있었는데,
그건 손수 깎고 갈아주신 이름도 무작스러운 돌도끼.
  아버지는 그걸 내게 주시면서 말씀하셨어.
  “이 도끼로 네 앞의 길을 열고, 너의 세상을 열되, 그보다 먼저 네 안에 무성한 욕심 가지부터 쳐내어라.”
(2018. 12. 15. 제101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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