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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가을(정철우)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7-09-01 오전 9:36:44

조회수 3407

게시물 내용
제목 가을(정철우)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7-09-01 오전 9:36:44 (조회 : 3407)
가을
정철우(경찰보안협력위원회 고문)
 
  수수잎을 스쳐가는 바람소리에 가슴이 공허해지고, 애절하게 울어대는 귀뚜라미 울음소리에 먼 옛날 누군가가 그리워지면 가을이다. 가을은 그리움의 계절이다. 어린 시절 고향산천이 그립고 내가 버린 님, 나를 버린 님이 그립고, 지금은 이 세상에 계시지 않은 부모님이 그립다. 눈물의 원천은 그리움이다. 가을에는 그리움이 많아서 눈물을 많이 흘린다. 코스모스 씨앗을 받으며 눈물을 흘리고, 떨어지는 낙엽 소리에 눈물을 흘리고, 식어가는 태양의 온기가 그리워 눈물을 흘린다. 강물이 마르지 않고 가을에도 흐르는 까닭은 그리운 사람들이 흘리는 눈물이 강물을 이루기 때문이다. 봄바람은 살랑살랑 불지만, 가을바람은 솔솔 분다. 가을바람 솔바람, 솔솔 불면 여행을 떠나고 싶다.
  가을옷으로 갈아입고 가을 모자를 쓰고 손에는 가을 가방을 들고 가을 여행을 떠나고 싶다. 인적이 붐비는 명승고적지가 아니다. 들국화가 피고 산 꿩이 우는 가을 산으로 가고 싶다. 가을 산에 가서 머루, 다래를 따고 싶다. 산수갑산의 머루, 다래가 아니라도 상관없다. 어린 시절 내 고향 산천에 지천으로 익어가던 머루, 다래를 따 먹고 싶다. 머루, 다래를 따다가 술을 빚어 놓고, 비 내리는 가을밤에 낙엽 지는 가을밤에 일배, 일배, 부일배 마시고 싶다. 추야장 긴긴밤에 술을 마시고 인생을 마시고 무정세월을 마시고 싶다. 가을에는 노래를 부르고 싶다. 무더운 여름밤 슬피 울던 두견이가 피를 토하고 죽어간 산마루 턱에서 가을 노래를 부르고 싶다.
 
  기러기 울어예는 하늘 구만리
  바람이 싸늘 불어 가을은 깊었네
  한낮이 끝나면 밤이 오듯이
  우리의 사랑도 저물었네
  산촌에 눈이 쌓인 어느 날 밤에
  촛불을 밝혀두고 홀로 울리라
  아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박목월 시, 김성태 곡 「이별의 노래」다.
 
  인생은 가는 것이다.
  내가 가고 아내가 가고
  내가 가고 친구가 가고
  인생은 가는 것이다.
 
  가는 문제를 생각하면 눈물이 흐른다. 천년만년 더 살고 싶어서 흐르는 눈물이 아니다. 석양노을을 보지 못하고, 사랑하는 가족들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한평생을 살면서 마디마디 뼛골마다 쌓이고 맺힌 한이 피눈물이 되어 흐르는 것이다. 언젠가는 가야 할 산이기에 시간이 나면 산으로 간다. 산에 가면 솔잎을 스치는 바람 소리, 계곡을 흐르는 청아한 물소리, 이름 모를 산새들의 울음소리, 어는 것 하나 반갑지 않고 그립지 않은 것이 없다. 봄에는 꽃향기, 여름에는 초목 향기, 가을에는 단풍 내음, 꽃피는 화산, 잎 푸른 청산, 눈 내리는 백산도 좋지만, 단풍이 곱게 물드는 만산홍엽 가을 산으로 가고 싶다.
  가을은 자연의 계절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인생의 계절에도 가을이 있다. 자연의 계절 가을이 오면, 오곡백과를 수확해서 버릴 건 버리고, 내다 팔 건 내다 팔고, 저장할 건 저장하는 것이다. 인생도 그와 같아서 인생의 계절 가을에 애지중지 키운 자녀를 혼인시켜 아들은 며느리 주고, 딸은 사위를 주는 것이다. 자연의 계절 가을에 추수를 마친 텅 빈 들판이 외로운 것처럼 인생의 계절 가을에 자녀를 출발시키고 나면 텅 빈 가슴에 외로움만 남는다. 이런 현상을 심리학자들은 ‘빈 둥지 증후군’이라고 한다. 자연의 계절 가을에 볏짚으로 나무를 싸 주고 화분을 실내에 옮겨놔야 추운 겨울을 무사히 날 수 있다. 인생의 계절 가을에 건강관리를 잘 해야 인생의 겨울을 행복하게 보낼 수 있다. 자연의 계절 겨울은 얼어 터지고 깨지고 부러지고 부서지는 계절이다. 인생의 계절 겨울이 오면, 허리가 아프고 무릎이 아프고 혈압이 올라가고 혈당이 올라가고 새로운 병이 자꾸 발생한다. 그래서 인생의 가을에 건강관리를 잘 하고, 인생 정리를 잘해야 인생의 겨울을 후회 없이 보낼 수 있다. 자연의 계절은 겨울이 가면 명년 봄이 오지만, 인생의 계절은 겨울이 가도 봄이 오지 않는다. 그래서 옛 어른들이 말하길, ‘춘초는 연년록이요, 인생은 귀불귀’라고 했다. 명언 중에 명언이요, 원칙보다 더한 철칙이다. 인생의 가을을 보내고 있는 독자들이여, 인생의 가을을 관리 잘하고 정리를 잘해서 인생의 황혼기 겨울을 후회 없이 보내기 바란다. 필자는 인생의 가을을 다 보내고, 인생의 겨울을 살고 있다. 겨울 중에서도 소한, 대한 무렵을 살고 있다. 그래도 가을 산으로 가고 싶다. 여생을 가을 산촌에서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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