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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즌 쉬 러블리(이인호)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5-06-15 오전 10:24:59

조회수 44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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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즌 쉬 러블리(이인호)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5-06-15 오전 10:24:59 (조회 : 4475)
이즌 쉬 러블리
  이인호(경은학교 교사)
 
  결혼을 하면 남녀 할 것 없이 모두 살이 찌나 봅니다. 저와 아내 모두 통통하게 살이 올라 정월 대보름달처럼 둥글둥글합니다. 그나마 아내는 임신이라도 했지만 저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데 왜 이리 뽀작뽀작 살이 붙는걸까요! 아마도 임신 이후 폭풍 식욕을 뽐내고 있는 아내 덕이겠지요. 아내가 먹을 때 저도 옆에서 따라 먹으니까요. 임신 8개월째인 아내는 과일이든 고기든 가리지 않고 멧돼지마냥 잘 먹어줍니다. 아내는 요즘 수박에 푹 빠져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큰 수박 반 통이 아내에 의해서 장렬히 전사당하는 중이지요. 어쨌든 뱃속의 아이를 생각하면 잘 먹는 아내가 무척이나 고마울 따름입니다.
  지난 달 초 뱃속의 태아를 보기 위해 아내와 함께 산부인과를 찾았습니다. 요즘엔 입체초음파란 걸 통해 뱃속의 아이를 자세하게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아내는 초음파실 침대에 눕고 저는 그 옆 의자에 앉아서 의사와 아내의 설명을 들었지요. 의사선생님도 제가 시각장애인이란 걸 알고 더욱 자세히 설명을 해 주는 눈치였습니다. 아내는 영상을 보며 아기의 팔과 다리가 길고 손가락 발가락도 예쁘게 생겼다고 좋아합니다. 저도 덩달아 신이 나더군요. 팔과 다리, 허벅지, 엉덩이, 척추, 목 그리고 머리까지 살펴본 후 드디어 아기의 얼굴을 볼 차례가 되었습니다. 과연 누구를 닮았을까요? 아이쿠 이런! 제 얼굴을 쏙 빼닮았다고 하네요. 우락부락 큰 바위 얼굴처럼 생긴 아빠를 닮다니! 정말 대략난감입니다. “그래도 아빠를 닮아서 다리는 길어요.”라고 말하며 아내는 저를 위로합니다. 역시나 마음씨 착한 아내입니다.
  그렇게 뱃속 아기를 보고 온 날 밤에 저는 꿈을 꾸었습니다. 앙증맞은 손을 내밀며 저에게 아장아장 걸어오는 깜찍한 여자 아이의 꿈을 말입니다. 꿈속이었지만 무척 행복했습니다. 꿈 속 아이도 그렇게 예쁜데 실제 제 아이가 태어난다면 얼마나 예쁠까요! 딸이 태어나는 모습도 보고 싶고, 쌔근거리며 폴폴 잠들어 있는 모습과 아장아장 걸으며 저에게 안기는 모습도 보고 싶습니다. 오물오물 거리며 이유식을 먹는 모습, 퇴근하는 아빠에게 달려와 안기는 모습 그리고 앞니 빠진 채로 방실방실 웃고 있는 딸아이의 모습도 보고 싶습니다. 앞을 보고 싶다는 바람이 간절해지는 요즘입니다.
  그러고 보니 문득 미국의 유명한 가수 스티비 원더가 생각납니다. 시각장애인이기도 한 스티비 원더는 오랜 시간 동안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아온 팝 아티스트입니다. 30곡이 넘는 노래를 히트시켰으며, 아카데미 음악상과 25번의 그래미상을 수상한 살아있는 전설이지요. 최근에 저는 스티비 원더의 이즌 쉬 러블리(Isn't she lovely)란 노래를 아주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그 노래에 얽힌 사연이 저의 마음을 울렸기 때문입니다. 41년 전, 젊은 스티비 원더 부부에게 예쁜 딸이 태어났습니다. 그 무렵부터 스티비 원더가 가장 많이 한 말은, “제 딸 예쁘죠? 제 딸이 무척 사랑스럽지 않나요?”라는 딸에 대한 자랑이었습니다. 우리나라 같았으면 분명 팔불출이라고 핀잔을 받았겠지요. 심지어 스티비 원더는 딸의 모습을 보고 싶은 마음에 개안수술까지 결심하게 됩니다.
  “단 15분만이라도 제 딸의 얼굴을 볼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그러나 딸을 보고 싶다는 스티비 원더의 소망은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유능한 안과 전문의들을 찾아 다녔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절망적이었습니다.
  “당신의 시신경 손상 정도는 너무도 심각합니다. 안타깝지만 수술을 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결국 스티비 원더는 개안수술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실망감으로 힘들어했을 그를 생각하니 제 마음도 더불어 애틋해집니다. 하지만 스티비 원더는 딸에 대한 사랑을 노래로 승화시켰습니다. 바로 ‘이즌 쉬 러블리’란 노래이지요. 1976년 발표된 이 노래의 원곡에는 딸의 울음소리가 제법 긴 시간 동안 들어 있습니다. 가사에도 시각장애를 갖고 있는 아버지의 사랑이 위트 있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시각장애인이라면 누구나 ‘만약 내가 앞을 볼 수 있다면’이란 기분 좋은 상상을 해 보았을 것입니다. 저 역시 그런 상상을 가끔 해 보니까요.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어떤 사람들은 저를 위로한답시고 이런 말을 하기도 합니다.
  “이 더러운 세상 안 봐서 좋겠다. 이런 것 봐봤자 눈만 더러워지지 뭐!”
  하지만 그 더러운 세상이라도 한없이 보고 싶은 게 우리 시각장애인들의 마음입니다. 세상은 더러울지라도 우리가 사랑하는 가족만큼은 마음껏 볼 수 있을 테니 말입니다. 41년이 지난 지금 스티비 원더는 여전히 딸의 모습을 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딸을 보고 싶은 그의 바람은 한결같다고 합니다. 저 역시 그렇습니다. 조금이라도 빨리 제가 사랑하는 딸의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그런 날이 꼭 오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시각장애를 갖고 있는 이 세상 모든 부모님들이 사랑하는 자식의 모습을 한없이 바라볼 수 있는 그 날이 하루 빨리 찾아오기를 말입니다. 오늘도 제가 서 있는 이 긴 터널을 묵묵히 걸어갑니다. 끝 모를 긴 터널이지만 언젠가 만나게 될 환한 빛을 향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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