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지팡이 담양에 가다
서해웅(서울시 구로구청 공무원)
요금소를 빠져 나오자 숯불에 구운 돼지갈비 냄새가 마치 안개처럼 도로 주위에 퍼져 있었다. 문득 아궁이 생각이 났다. 서양과 달리 한옥에는 굴뚝이 없다. 만약 산타할아버지가 있다면 아마도 한옥집에는 마당에 선물을 던져 놓고 가야지 굴뚝을 찾다가는 낭패를 볼 것이다.
그럼 아궁이에서 피어난 연기는 어디로 나갈까? 답은 방고래다. 방고래란 방의 구들장 밑으로 나 있는, 불길과 연기가 통하여 나가는 길을 가리킨다. 그 모양이 마치 고래를 닮았다 하여 붙인 이름이다. 그래서 한옥의 연기는 하늘로 올라가지 않고 옆으로 퍼져 나가는 것이다.
한번 상상해 보라! 대나무숲 사이에 있는 한옥집을. 저녁나절 밥 짓는 연기가 대나무숲 사이로 스믈스믈 퍼져 나가는 모습을. 참 정겹고 고즈넉한 옛 담양의 풍경이 아닐까 싶다.
도로 옆으로 기와집 서너 채가 있었는데 모두 돼지갈비집이었다. 주차장은 이미 꽉 차 있어 동네 한 귀퉁이에 차를 대고 식당으로 갔다.
“삼십분 정도 기다리셔야 하는데요...”
계산대에 있는 점원은 익숙한 듯 미안한 내색도 없이 그러나 정중하게 말했다. 우리 일행은 기다려 보기로 했다. 가게 밖 기와로 만든 처마 밑에서 한 여자 종업원이 서서는 쉴 새 없이 고기를 굽고 있었다. 이곳에 있는 숯불갈비는 손님이 아니라 종업원들이 구워서 가져다주기 때문에 시각장애인들끼리 오더라도 누구 한 명 고생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한참을 기다려서야 겨우 방 안에 앉을 수 있었다. 종업원들은 이방 저방으로 음식을 나르느라 분주했다. 시골에 있는 식당답게 모두 앉아서 먹는 공간이었다. 흔히 홀이라고 하는 테이블이 놓인 공간은 없었다. 다들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서 상추쌈에 돼지갈비를 싸 먹기 바빴다. 반찬에는 역시 죽순이 빠지지 않았다. 일행과 함께 둘러 앉아 한동안 말도 안 하고 고기를 집어 먹었다. 그런 행동은 한참을 기다린 우리 옆 상도 마찬가지였다. 한참 억양이 센 경상도 말씨로 음식이 늦게 나온다며 불평을 하던 사람들이었는데 어느 새 한 접시 고기를 비우고 고기를 더 주문하고 있었다.
“혹시 고기 추가하실거면 지금 먼저 말씀해 주세요!”
한참 고기를 먹고 나서야 주문을 받던 점원의 말이 떠올랐다. 워낙 손님들이 몰려들 시간이라 그런지 더 먹을 고기를 먼저 그것도 아직 고기는 보지도 못했는데 선주문을 하란다. 생각해 보니 좀 황당한 말이 아닌가? 아직 고기를 먹지도 않았고 더 주문하는 것이야 고기를 다 먹고 나서도 배가 부르다고 느껴지지 않을 때 아니면 배는 불러도 어떻게든 더 먹고 싶을 때 하는 것인데 그걸 미리 알아서 주문하라니 말이다. 식당 주인은 아마도 그 동안의 노하우로 이런 선주문방식을 개발한 듯 한데 그 말이 맞는 것인지. 우리가 다 먹고 일어날 때까지도 옆 상에는 추가 주문한 고기가 도착하지 않았다.
점심을 마친 우리 일행은 메타세쿼이아길을 향해 출발했다. 메타... 어쩌고 저쩌고 나무. 나는 아직도 이 나무의 이름이 어색하기만 하다. 처음 이 길 이름을 들었을 때 내가 했던 말이다. 메타 뭔 길? 발음도 어렵고 우리말도 아니라 담양과는 전혀 정말 전혀 어울리지 않는 길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나무 이름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차라리 나무 이름을 빼고 다른 길 이름을 붙였으면 어땠을까 하는 사견을 아직도 떨쳐 버리지 못하고 있다. 지금은 워낙 유명해져서 다른 곳에서도 이 나무를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름만은 정말 아직도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담양은 본디 대나무가 유명한데 언제부터인가 대나무 대신 메타세쿼이아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조금 안타깝기도 하고 세상이 변하고 있는 것이니 어쩔 수 없다는 생각에 한편으로는 수궁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대나무가 우리들 입가에 오르내리지 않으면서 대나무에 얽힌 말들이며 이야기도 사라질까봐 그게 더 걱정이 된다.
생각해 보면 대나무와 관련된 말들이 참 많다. 대나무를 쪼개는 기세라 하여 일컫는 ‘파죽지세’ 어린 시절 친구를 가리키는 ‘죽마고우’ 등등 또 대나무로 만든 친근한 물건도 많다. 대표적으로 ‘단소’가 있다. 아마 어린 시절 단소의 소리를 내기 위해 한번쯤 고생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또 대나무로 활을 만들어 쏘거나 죽마를 만들어 놀기도 했다. 아마도 내가 시골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에 이런 것에 더 애착이 가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지만 그래도 뭔가 사라진다는 것은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메타세쿼이아길 입구에서 입장료를 내고 길 안으로 들어갔다. 역시나 사람들이 많았다. 사람들은 많았지만 공기는 더할 나위 없이 상쾌했다. 양껏 피톤치든지 피톤치킨인지를 들이마시고 나니 머리도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다소 복잡한 머리를 비우는 데는 산림욕이, 이 발음하기도 어려운 나무가 좋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대나무숲에 대한 미련을 떨쳐 버릴 수는 없었다. 가슴 한 구석에 아쉬움을 안은 채 담양 여행이 끝나가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