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의 노래
박향숙(한국시각장애인여성연합회 공동대표)
나뭇잎이 낙엽이 되어 누운 일자산 자락을 걷는다. 그 마른 향기가 꽃향기보다 은은하고 깊어서 좋다. 옆에서 내 손을 잡고 바스락거리며 걷던 또 한 발걸음 이제는 들을 수 없다.
시어머님이 맥을 놓고 낙엽처럼 지시던 날 나는 되돌릴 수 없는 시간 앞에서 눈물을 뿌렸다. 눈 깜짝할 사이 뇌경색으로 주저 앉은 육신은 다시는 일어설 줄 몰랐다.
7, 8월 시퍼렇던 위상을 한순간에 잃고 저리도 허무하게 무너질 수 있다니! 항아리의 밑바닥이 빠지듯 내 몸의 핵심 부분이 휑하니 뚫린 것 같은 10년 전의 그 상실감은 쉽게 치유되지 않았다.
형제가 많지 않은 내게 친정어머니마저 우리가 결혼한 이듬해에 돌아가시고, 시어머님도 6·25 동란 때 해주에서 남하 하신 분이라 주변에 친·인척이 별로 없었다. 그 때문이었을까... 우리는 알게 모르게 서로에게 많이 의지하고 지냈던 모양이다.
어머님의 동행길에는 거의 내가 있었고, 나는 어머님의 해결사였다.
전화벨이 울리면 빈번히 침통을 들고 뛰어갔다. 어느 때는 복통으로, 어느 때는 운동을 하다 다쳐서...
그럴 때마다 의사며느리를 두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일 두 가지만 적어본다. 어머님이 건강을 지키는 방법 중에 하나가 해마다 1월에는 병원에 입원하여 포도당과 아미노산을 비롯한 수액을 한 보름쯤 맞는 것인데 병원에 입원하려면 검사부터 하라며 피를 뽑으려들고 별 이상이 없으면 입원을 거절하기 일쑤거늘 그런 과정들은 생략하고 단지 수액만 맞도록 의사를 잘 설득해보라는 황당한 말씀이었으나 따를 수밖에. 그중에 잊지 못할 분은 고려대병원의 유명한 과장님이었다. 어머님은 옆에서 아픈 시늉을 하고 계시고, 나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매달려 사정한 결과 허락을 받아냈다. 어머님은 기뻐하시며 네가 시를 잘 쓰니 감사의 시를 좀 지어서 드리자고 하셨다. ‘기적의 손’이라는 시를 지어 드렸고, 이후 입원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또 다른 한 가지는 아주 난처한 것으로 전도차 방문하는 목사와 전도사를 쫓아 달라는 말씀이었다. 한데, 문제는 시아버님이었다. 미국에 계시는 동안 이미 교회에 열심히 다니셨고, 중풍으로 자리 보존을 하시는 중이라 적적하셨던지 그들의 방문을 반기시는 눈치였다. 어머님 역시 기독교 계통의 배화여고를 나오셨으나 어찌된 일인지 답답한 일이 있으시면 절을 찾는 형편이었다. 그 일로 집안이 들끓었다. 우리 부부가 성당에 다니는 것은 문제 삼지 않으셨으나 아버님을 찾아오는 그들에 대해서는 노기가 충천했다.
나는 몰래 목사님께 전화를 드려서 내 곤혹스러운 처지를 설명하며 상담을 드렸더니 오히려 나를 위로하며 방문을 끊으셨다. 은근히 아버님께 미안하여 더 자주 말벗도 되어 드렸다.
어머님께는 혜안이 있으셨을까?
만일 너나 내가 병이 들면 의술이 앞서는 미국에 가서 치료를 받아야 할 텐데 의사와 대화를 하려면 영어를 배워야 하지 않겠느냐며 배울 곳을 알아보라 하셨다. 그래서, 우리는 매주 가방을 들고 현대백화점 문화센터에 다니게 되었다. 수업이 끝나면 여학생들처럼 이것저것 군것질을 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머님은 말씀대로 뇌경색으로 쓰러지시자 2년 후 미국에 사는 시동생에게로 떠나셨다.
내가 걸을 때마다 귀걸이가 달랑거리며 그리움을 불러온다. 미용실에 데리고 가서 귀를 뚫어 귀걸이를 달아준 이도, 눈썹 문신을 해준 이도 어머님이시다.
귀걸이 모양의 낙엽들이 산길에 깔려 내 발길을 앞장서 인도하며 노래를 부른다. 사랑의 앤솔러지를...
* 편집자 주: 앤솔러지란 짧은 명시 또는 명문의 선집을 말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