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등급제 폐지 국회 본회의 통과... 2019년 7월 단계적 시행
장애등급제 폐지가 지난 12월 1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로써 2019년 7월부터 장애등급제가 단계적으로 폐지된다.
장애등급제가 폐지되면 지금의 장애등급(1~6급)에 따라 이뤄지던 사회복지서비스가 ‘종합판정체계’를 통해 제공된다. 보건복지부(이하 복지부)는 장애등급제 폐지로 장애인의 욕구와 환경을 고려한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복지부는 ‘장애인복지법’, ‘장애인활동지원에 관한 법률’, ‘장애인연금법’ 개정으로 장애등급제 폐지를 위한 법적 기반을 조성했다. 장애인복지법에 ‘장애등급’을 ‘장애정도’로 변경했다. 또한 맞춤형 서비스 제공을 위한 서비스 지원조사 실시 근거와 장애인 방문상담 및 사례관리 수행 근거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장애인등급제 폐지 논의는 2012년부터 시작됐다. 박근혜 정부의 장애인정책 공약 중 첫 번째가 장애등급제 폐지 및 개선이었다. 2013년 4월에는 ‘장애판정체계기획단’이 구성되고, 장애인정책 국정과제 추진 계획이 발표되기도 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 4년 동안 장애등급제 폐지 방향은 장애계와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2014년에는 ‘장애종합판정체계개편 추진단’이 구성됐지만, 폐쇄적이고 비민주적인 운영으로 질타를 받았다. 같은 해 ‘장애종합판정체계 개편 도입 연구 주요 결과’가 발표됐다. 이후 2015~2017년에 장애등급제 개편 시범사업이 세 차례 시행됐다. 제1차는 6개 지자체에서 예산 11억 원, 제2차는 10개 지자체에서 예산 14억 원, 제3차는 18개 지자체에서 50억 원이 투입됐다.
이런 과정과 함께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폐지광화문공동행동(이하 공동행동)’은 2012년부터 서울 광화문에서 1,842일간 장애등급제 폐지 농성을 했다. 문재인정부 출범 후 2017년 9월 복지부 박능후 장관이 농성장을 방문해 장애등급제 폐지 약속 후 농성을 중단한 바 있다.
이후 10월부터 ‘장애등급제폐지민관협의체(이하 협의체)’를 운영해 2019년 시행을 목표로 구체적 실행안을 준비해 왔다. 협의체는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전국장애인부모연대 등 4개의 장애인 단체와 사회복지 전문가 6명, 복지부 정책 담당자 2명으로 구성돼 있다.
그러나 장애계는 이번 장애등급제 폐지 법률 개정에 유감을 표명했다. 장애인 단체의 의견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당시 이들 장애인 단체는 ‘등급제 폐지를 위한 로드맵, 예산 확대 방안’을 요구했다. 또한 장애인연금 지급 대상을 기존 1~2급, 중복 3급이었던 것을 3급으로까지 확대와 장애등급 재심사 중단이 우선 논의가 돼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제3차 협의회가 예정된 날, 국회 본회의가 열렸다는 것이다. 따라서 협의체 내부에서 합의도 하지 않고 국회 일정에 따라 성급하게 법을 통과했다는 주장이다.
이에 복지부는 박능후 장관 주재로 지난 12월 5일 주요 장애인 단체장과 간담회를 열었다. 이날 박 장관은 “정부의 장애인정책은 장애인의 완전한 통합과 참여를 목표로 하고 있다”며 “장애등급제 폐지를 위해 장애계와 소통하고 논의해 나갈 것”이라며 단체장들에게 협조를 요청했다.
그러나 장애인계는 수긍하지 않고 있다. 공동행동은 지난 12월 7일 성명서를 내고 정부의 법안 통과에 유감을 나타내며 신뢰 확보를 촉구했다. 공동행동은 “복지부가 협의체를 통해 신뢰를 가지고 논의하고 합의하는 길을 함께 가기를 원한다”며 복지부 장관에게 공식적인 면담을 다시 요청했다.
이런 장애계의 반발에 대해 세종사이버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오윤진 교수는 “현재 정부가 장애등급제 폐지로 변화할 내용을 장애인 당사자들에게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정부의 대안을 직접 들어본 결과, 장애등급제 폐지 준비가 아직 미흡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장애등급제 폐지가 가능하려면 우선 장애인복지 예산의 확대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진단했다. OECD 국가의 GDP 대비 장애인복지 지출은 평균 2.11%인데, 한국은 0.61%에 그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논의도 구체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장애등급제 폐지는 장애를 등급으로 나누는 구시대적이고 획일적인 분류에서 벗어나 맞춤형 사회복지 서비스를 시행하겠다는 것이다. 대부분 이러한 방향성에 대해서는 공감하지만, 장애인 개인의 복지서비스 공백과 행정 혼란을 우려했다. 시각장애인 A 씨는 “법안부터 통과시키고 후속 조치를 도모하는 것은 장애인뿐 아니라 행정에서도 문제가 발생할 것이 불 보듯 뻔하다”며 “다른 장애인정책도 준비 없이 시작해 혼란만 가중된 사례가 많았다”고 지적하며, 장애등급제 폐지 시행에 앞서 철저한 준비를 촉구했다.
일부 시각장애인 중에서는 장애등급제 폐지로 각종 사회복지서비스 혜택이 줄어들까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이에 오윤진 교수는 “지금까지 받아왔던 혜택에서 배제될까 걱정하는 것은 정부가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정부가 확실한 대안을 마련해 당사자의 우려를 해소해야 장애등급제 폐지의 의미가 퇴색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2018. 1. 1. 제992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