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렬 씨,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안마합니다”
서울 관악구 봉천동에 위치한 정안마원. 이곳에는 올해로 40년째 안마사 외길 인생을 살아온 정종렬(1급, 62세) 씨가 있다.
정운찬 전 국무총리와 김준규 전 검찰총장,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등 사회의 내로라하는 명사들이 단골이 될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는 안마사지만, 그는 인터뷰 요청에 “제 이야기는 너무 평범한 이야기라서 해 드릴 게 없는데….”라고 말하며 쑥스러워 했다.
그가 처음 안마사의 길을 걷기 시작한 해는 1974년이었다. 졸업 몇 달 전 모 안마원의 실습생으로 뽑혀 실습 과정이 끝나면 취업이 보장되는 좋은 기회를 얻었다. 그러나 어엿한 안마사로 인정받기란 쉽지 않았다. 취업 첫날에는 오리엔테이션과 안마 테스트로 시간을 보냈고 이튿날에는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손님에게 퇴짜를 받았다. 그 뒤로도 이런 저런 이유로 일을 못하다가 엿새째에서야 일본 손님에게 안마 시술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그는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다는 각오로 문을 밀치고 들어가 “오늘은 서비스로 봉사할 테니 마음에 맞으면 내일 다시 부르라”고 외쳤다.
136kg에 달하는 거구의 손님이었기에 힘이 부쳤지만 다시는 주어지지 않을 기회라고 생각하고 안마에 임했다. 마치 손님을 ‘부모님의 원수’인 것처럼 혹은 ‘독립을 위해 싸우다 돌아가신 선인들을 대신하여 보복’하는 것처럼 온힘을 다했다고. 그 보답으로 그는 당일의 안마 시술비와 더불어 팁까지 받을 수 있었고, 5일간 매일 와달라는 부탁도 받았다. 그렇게 그는 한 명의 안마사로서 당당히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었다.
이후 그는 1978년부터 출장안마사로서 강남구 신사동과 청담동, 대치동 등지에서 일하며 돈을 모아, 1991년에 지금의 봉천동으로 일터를 옮겼다. 고객에게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고 전심전력을 다해 시술해왔던 만큼 그의 안마 실력에 대한 소문이 퍼져나가 많은 이들이 그의 안마원을 드나들었다.
1997년 IMF 경제 위기 이후로 손님이 하루 대여섯 명으로 줄면서 운영이 어려워져 안마원 규모를 줄여야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좌절하지 않고 많은 이들의 피로를 풀어주고 치료하면서, 때로는 단짝 친구처럼 말벗이 되어주면서 꿋꿋이 안마원을 지켜오고 있다.
“손님과 마찰까지는 아니지만, 요금이 비싸다고 더 저렴하게 해달라고 말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그럴 때마다 이러저러한 이유 때문에 힘들다고 설명 드리면 이해해 주세요. 그렇지만 안마사 일을 오랫동안 해온 만큼 손가락이나 손목이 성치 않은데 그런 얘길 들으면 힘이 빠지기는 하죠….”
사실 그의 입장에서도 돈을 생각한다면 안마원보다는 안마시술소를 운영하는 것이 나은 선택이었겠지만, ‘혼자서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는 신념으로 안마원을 고집해왔다.
이처럼 안마를 위해 살아온 정종렬 씨의 유일한 취미는 바로 ‘공부’다. 남는 시간을 소중히 보내고 싶다는 생각에서 2000년부터 시작했던 공부는 어느새 교육학, 법학, 행정학 학사 학위로 남았다. 현재 그는 경제학을 전공하고 있다. 시각장애를 갖고 있는데다 62살이라는 나이에 공부를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오랜 시간 쌓아온 그의 지식은 어떤 손님과도 막힘없이 대화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경쟁력이 됐다.
한편, 그는 안마사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후배들에게 이런 조언을 하고 싶다고 했다.
“게으름 부리지 않고 열심히 해야 합니다. 맹학교와 수련원에서 공부할 때부터 제대로 배워서 나와야 합니다. 동정심을 유발해서 찾아온 손님은 한두 번 밖에 안 옵니다. 스포츠 마사지, 타이 마사지 등 다 경험해 보고도 다시 우리 안마사들에게 돌아올 수 있도록 제대로 공부하고 실력을 쌓아야 경쟁력이 생길 수 있습니다.”
(2014.07.15 제909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