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알림공간

제목 [점자새소식] “새로 얻은 생명, 다른 이들을 위해 쓰고 싶습니다!”

작성자 기획총무팀

작성일 2014-04-15 오후 5:56:22

조회수 3625

게시물 내용
제목 [점자새소식] “새로 얻은 생명, 다른 이들을 위해 쓰고 싶습니다!”
작성자 기획총무팀 작성일 2014-04-15 오후 5:56:22 (조회 : 3625)

“새로 얻은 생명, 다른 이들을 위해 쓰고 싶습니다!”

  2005년 6월, 한 장애인의 안타까운 사연이 알려지면서 많은 이들의 눈시울을 적시게 만든 적이 있었다. 사연인즉슨 신장·시각 중복장애를 앓고 있는 종광희(남, 43세) 씨가 신장이식 수술비가 없어 고통을 받고 있다는 것이었다.
  “앞은 보이지 않고, 일주일에 세 번이나 투석을 받아야만 살 수 있으니 이게 어디 사는 겁니까? 셰익스피어가 그랬던가요? 죽느냐 사느냐 이것이 문제로다! 그러나 죽느냐 사느냐는 저에게도 문제였습니다. 살 길을 주셨으니 더 열심히 살아야 하는데, 당장 병원비가 없어 죽겠습니다.”
  그 후 9년이 흘렀다. 사연의 주인공인 종광희 씨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그동안 그의 삶에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우선 그는 작년부터 장애인자립생활센터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그는 자조모임 ‘라이프존’에서 사무국장으로 일하면서 장애인들의 일자리 창출에 관심이 생겼다고 했다. 이후 센터 측에 양해를 구해 일자리창출사업팀을 독립시켜서 ‘남동중증장애인자립생활센터’를 설립했다. 대부분의 소규모 장애인 단체들이 그러하듯 경제적 문제로 인해 어려움은 겪고 있지만, 그래도 그는 장애인들이 일하는 보람을 느낄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자립할 수 있도록 노력을 계속 해오고 있다.
  이외에도 종광희 씨는 봉사활동을 하는 데에 많은 힘을 쏟고 있다. 자조모임을 운영하며 시각장애인의 권익을 도모하고, 봉사활동을 하며 주변에 사랑을 전하고 있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모여서 안마 봉사와 음악연주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여유가 있을 때에는 마술사 강창구 씨와 함께 마술 봉사도 하고 있습니다.”
  또 그는 아름다운 선율로 사랑을 전하는 ‘아띠오카리나’의 회원들과도 봉사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이처럼 종광희 씨가 활발히 사회활동을 하고, 봉사활동을 통해 사랑을 전할 수 있도록 건강을 되찾게 된 것은 많은 이들이 사랑을 나눠준 덕분이었다.
  “2005년에 3천 7백여 분의 후원을 받아 장기이식 수술을 받을 수 있었어요. 생명을 새로 얻게 된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그 많은 분들을 찾아다니며 감사 인사를 드릴 수는 없더라구요. 대신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저보다 어려운 환경에 처한 사람을 위해 일하는 것이 그분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는 것이 아닌가 싶었어요.”
  새로이 생명을 얻기 전 그의 삶은 평탄치 않았다. 12살 때부터 당뇨병을 앓았지만, 그를 돌봐줄 가족들은 아무도 없었다. 아버지는 술만 마시면 폭력을 행사했고,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를 피해 집을 나가버렸다.
  의지할 곳 하나 없던 그는 살기 위해 어린 나이부터 신문보급소에서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른 새벽부터 낮까지 신문배달을 하고 오후에는 업무처리를 했다. 저녁이면 친구들과 어울리며 불우한 가정환경을 원망하며 밤늦도록 술을 마시는 등 방탕한 생활을 이어갔다. 그러다보니 하루에 2~3시간밖에 자지 못하는 날이 계속됐고, 어느 순간 ‘교통사고를 당하면 보험금으로 편히 쉴 수 있지 않을까?’라는 나쁜 생각도 하게 됐다.
  “말이 씨가 된다고 했던가요. 95년 12월 22일이 월급날이라 친구들 만날 생각에 들떠 있었는데 사고가 났어요. 커다란 유조차 뒷바퀴에 오토바이를 탄 채로 끼이고 말았죠….”
  그 사고로 인해 그는 왼쪽 다리를 잃을 뻔했고, 이로 인해 지체 장애가 생겼다. 불행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합병증이 몰려오기 시작했고, 녹내장도 생겼다. 6차례나 수술대에 올랐지만 결국 실명하고 말았고, 그 충격으로 거식증에 걸렸다. 한 달 내내 음식물을 넘기지 못하자, 몸 상태가 급속도로 나빠져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혼수상태에 빠진 그는 자신도 모르게 아버지를 찾았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때 제가 인천병원, 인천병원 그러더래요. 아버지도 유언이라 생각하고 병원을 옮겨주셨대요.”
  신기하게도 인천병원으로 옮긴 지 일주일 만에 기력을 되찾았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내가 있으면 (네가) 정부에서 도움을 못 받는다”라는 말을 남기고 연락을 끊어버렸다.
  그렇게 그는 기초수급자가 되었고, 오갈 데가 없었기에 병원에서 살다시피 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그는 서대문 적십자 병원으로 거처를 옮겼는데, 그곳에서 귀한 인연을 만났다. 옆 침대의 간병인이었던 그의 조언을 받고 종광희 씨는 자립하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1999년에는 검정고시를 통과했고, 2000년에는 대입검정고시에 합격했다. 2002년에는 방통대 행정학과에도 들어갔고, 2004년에는 안마사 자격증도 땄다.
  그러나 그는 일주일에 세 번씩 꼬박꼬박 혈액투석을 받아야 하고, 건강 상태도 좋지 않았던 탓에 안마사 생활을 계속할 수가 없었다. 결국 그는 살기 위해 신장이식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문제는 돈이었다.
  “(그때) 조승현 선생님이 저를 돕기 위해 사진도 찍어서 인터넷에 올리고 모금을 받기 위해 다리품도 파시고…. 그 분 덕분에 많은 분들이 제 사연을 아시고 도움을 주셨어요.”
  현재 종광희 씨는 지체장애와 신장장애뿐만 아니라, 당뇨병의 후유증으로 시청각장애까지 안고 있는 중복장애인이다. 이 모든 장애가 어린 시절이 불우했기 때문이라고 여기며 아버지를 원망할 수도 있으련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그는 자신을 버린 아버지를 원망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 아버지가 있었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강해지고, 자립심도 키울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앞으로도 말로만 (감사 인사를) 전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보은을) 실천하면서 살아갈 겁니다. 이런 제 모습을 보고 많은 분들이 ‘저런 사람도 행복하게 웃으면서 살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할 수 있다면 정말 좋을 거에요.”

(2014.04.15 제903호)

서울특별시 강동구 구천면로 645 (한국시각장애인복지관)

전화: (02)440-5200 FAX: (02)440-5219

Copyright 2012 All rights reserved to hsb.or.kr

한시복 이용안내

09:00~18:00(토·일 공휴일 제외)

02-440-5200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유투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