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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점자새소식] <인터뷰> 도전이라 쓰고 꿈이라 말하다, 배희관 밴드의 리더 배희관 씨

작성자 점자새소식

작성일 2019-03-29 오후 2:5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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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점자새소식] <인터뷰> 도전이라 쓰고 꿈이라 말하다, 배희관 밴드의 리더 배희관 씨
작성자 점자새소식 작성일 2019-03-29 오후 2:54:59 (조회 : 1751)
<인터뷰> 도전이라 쓰고 꿈이라 말하다, 배희관 밴드의 리더 배희관 씨
 
  “누군가 제 공연을 보고 평생에 기억으로 남는다면, 무대 규모와 상관없이 큰 공연이라고 생각해요.” 배희관 밴드의 리더로 보컬 겸 기타를 맡고 있는 저시력 시각장애인 배희관(남, 34세, 1급) 씨의 말이다.
  그는 대전맹학교에 다니던 중학생 시절, 브라스밴드에서 드럼을 치던 형이 유학을 가면서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 고등학생 때는 외국의 록밴드 음악에 심취하고 친구들과 어울려 노래를 부르면서, 고 신해철 씨의 음악처럼 메시지가 있는 자신만의 곡을 써보고 싶다는 꿈을 다졌다.
  처음 국제적인 무대에 선 것은 바로 이맘때였다. 그의 재능을 알아본 선생님의 추천으로 그의 팀이 호주의 국제뮤직페스티벌에 참가하게 된 것이다. 누구나 공연장에 와서 즐길 수 있는 예술제의 문화가 신선하게 느껴졌다.
  이후, 컴퓨터 음악을 다루면서 직접 음을 만들고 가사를 붙여 노래하는 데 심취하여, 열정은 더욱 깊어졌다.
  * 포기하지 않은 꿈, 열매를 맺어가다
  고등학교를 마무리할 무렵, 안마사로 돈을 많이 번 후에 음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교사가 되라는 어머니의 간절한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고 대학에 진학했다. 운 좋게도 처음 본 임용고시에서 합격해 교사생활을 하게 되었다.
  교사생활 중에도 음악에 대한 열정은 여전했다. 당시 시각장애인으로만 구성된 밴드인 ‘4번출구’와 인연이 되어 팀에서 기타를 맡아 활동한 것이다. 밴드계의 인재를 발굴하는 프로그램인 ‘탑밴드’에 출연하여 공중파 방송을 타기도 했다.
  하지만, 그에게는 멤버들과는 다른 고민이 생겼다. “4번출구는 우리가 가진 장애를 밴드활동의 특성으로 여기는 팀이었어요. 음악 자체를 색깔있게 하고 싶은 저에게는 맞지 않아 개인적인 이유도 있고 해서 그만두었죠.”
  자신만의 음악을 하고 싶다는 고민 끝에 만든 것이 배희관 밴드였다. 멤버들은 대부분 공연을 하면서 호흡을 맞춘 적이 있는 비장애인 뮤지션들이었다. 멤버들에게 그가 작사 작곡한 곡을 공유해 각자의 악기로 악상표현을 더하는 방식으로 음악을 만들어갔다.
  그 사이에 우여곡절도 많았다. 멤버들은 젊은 예술인들이어서 생계가 어려웠기에 교체가 잦았고, 배 씨도 근무지를 대전으로 옮기면서 주말에만 멤버들과 만날 수 있었다. 어려운 과정과 연습 끝에 탄생한 곡들이 모여 6년째 이어오고 있는 지금, 어느 덧 두 번째 음반의 발매를 앞두고 있다.
  “개인 시간은 거의 작업실에서 보내요. 어떠한 기다림의 공간인 것 같아요. 이것저것 딴 걸 하다가 영감이 생기면 언제든지 박차를 가해 작업할 수 있는 곳이죠. 가사나 곡은 일상을 살다가, 아니면 인터넷에서 기사를 보다가 문득 하고 싶은 말이 생길 때 쓰곤 해요.”
  * 가슴에 새기고 끝없이 도전하다
  자신만의 음악을 하겠다는 꿈에 도전한 지 15년여 만에 배 씨에게는 세계적인 이목이 집중되는 무대에 설 기회가 주어졌다. 바로 지난해 평창패럴림픽 폐막식 피날레 공연에 참여한 것이다. 공연이 시작되자 5만 명 객석의 열기 가운데 바로 전 무대를 채웠던 가수 에일리 씨가 그의 손을 잡고 중앙무대로 올라섰다. 피날레의 마지막 음악이 흘러나왔다. 그날 두 사람이 부른 ‘그대에게’는 배 씨가 직접 편곡했다.
  “열기가 대단했어요. 저희 밴드가 실시간 검색어에도 오르고, 가장 큰 변화는 저희 부모님이었어요. 그 전엔 말리시던 분들이 이제 인정한다 그러시더라고요.(웃음)”
  배 씨에게 가장 따뜻하고 인상적이었던 공연 중 하나는 4번출구 시절 선덕원이라는 고아원에 작은 음악회를 선사하고자 방문했을 때였다. 무대가 없는 작은 강당이라 공연장비들을 바닥에 내려놓고 진행했는데, 공연이 끝나자 아이들이 다가와 악기를 만져보고 싶다고 했다. 아이들의 열렬한 호응과 함께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면서, 큰 무대라는 것은 규모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평생 잊지 못할 공연을 하는 것이라고 가슴에 새겼다.
  그의 도전은 근무하는 학교에서도 계속되고 있다. 2017년에 장애학생과 비장애학생, 지역사회가 참여하는 장애인식개선 대회인 어울림축전에서 발달장애인 학생 네 명과 함께 한 ‘사제동행밴드로’ 공연을 펼친 것이 주변에서 반응이 무척 좋았다. 박자와 음정이 잘 맞지는 않았지만 아이들이 자신감있게 연주하는 모습이 모두에게 감동이었다. 아이가 그렇게 빛이 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는 부모들의 찬사도 이어졌다.
  이후, 학교에서는 밴드반이 특성화되었고, 배 씨는 3년째 아이들을 지도하고 있다. 빡빡한 스케줄에 힘은 들지만, 아이들의 꿈을 향한 도전에 자양분이 된다는 생각으로 즐겁게 임하고 있다.
  그는 얼마 전 평창올림픽 1주년 기념 행사 ‘평창의 봄 피스 록 페스타’에 다시 섰다. 그를 세상에 알린 국제적 행사를 되새기는 소회가 남달랐다.
  “제 목표는 제 음악으로 지금보다 더 알려지는 것입니다. 유명해지면 제가 하는 말들이 누군가에게 중대한 영향력을 줄 수 있겠지요. 삶의 위로가 아니라도, 저처럼 음악하고 싶은 누군가에게 꿈을 줄 수 있으니까요.”
  넓고 깊어진 꿈을 말하는 그의 성숙한 도전은 지금도 계속된다.
 
(2019. 4. 1. 제102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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