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점자새소식의 주인공들을 만나다
독자들이 없었더라면 점자새소식(이하 새소식) 1000호는 아마 없었을 것이다. 독자 없는 매체란 존속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독자들이야말로 새소식의 진정한 주인공이다. 그래서 몇 분의 독자를 만나보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떤 독자를 만나야 하나 고심하던 끝에 새소식 제1000호 제1차 이벤트 당선자 김철구(남, 62세, 서울 강남구) 씨, 김효선(여, 67세, 경기도 김포시) 씨, 유동원(남, 70세, 강원도 원주시) 씨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이벤트 당선과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공고 및 광고 참조)
이벤트 당선 사실을 알리는 전화를 걸면, 대부분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 무려 새소식 제60호(1979년 7월 15일 자)를 보내온 김철구 씨도 예외는 아니었다.
“분명히 저보다 오래된 새소식을 보내온 독자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제가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죠(웃음).”
새소식을 ‘에너지 산타’라고 정의한 김효선 씨도 그랬다. 김 씨는 오행시가 당선됐을 줄 알았다고 털어놓았다.
“이벤트 마지막 날 부랴부랴 보내느라 예상하지도 못했었거든요. 저는 처음에 당선됐다고 해서 오행시인줄 알았어요. 마침 새소식 795호가 있어서 사진도 보내려고 하다 못 보냈는데, 60호가 뽑혔다니 안 보내길 잘했네요(웃음)!”
김철구 씨와 유동원 씨는 점자새소식을 거의 초창기부터 읽기 시작했다. 읽게 된 동기도 거의 비슷했다. 함께 맹학교를 다니던 친구들의 권유에서였다. 김효선 씨는 2007년부터 구독하기 시작했고, 지인의 권유로 읽게 됐다.
구독 동기는 비슷해도 지금까지 점자새소식을 읽는 이유는 저마다 달랐다. 김철구 씨는 ‘모름지기 글은 점자로 읽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고, 김효선 씨는 ‘지식과 정보를 얻기 위해’라고 했다. 유동원 씨는 ‘시각장애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기 위해’라고 대답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점자 읽기를 즐긴다는 것이었다.
김철구 씨는 ‘시각장애인 위협한 성남시 복지콜 운전기사(제986호 2017년 10월 1일 자)’ 기사를 읽으며 분노를 금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우리의 발이 된다고 믿었던 복지콜 운전기사가 시각장애인을 오히려 위협했다고 하니 더욱 실망스럽고 참담했죠. 후속 조치는 더 처참하고요. 하지만 이런 기사처럼 새소식에 시각장애인계의 사건 사고 소식이 더 많이 실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김효선 씨는 새소식이 다른 시각장애인과의 공감대가 형성됐던 ‘지진 관련 매뉴얼, 하루빨리 대책이 시급하다(제963호 2015년 10월 15일 자)’ 기사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한다.
“내용 중에 창원에 사는 시각장애인이 ‘죽은 후에 발견될 때 지저분하면 안 되니까 깨끗한 옷을 갈아입었다’는 부분이 기억에 많이 남아요. 나도 그런 상황에서 그럴 것 같아 공감도 했고, 죽음을 떠올리니 왠지 서글퍼지기도 했어요.”
유동원 씨는 ‘이진희 전 점자새소식 편집부장 별세(2009년 11월 15일 자)’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유 씨는 기사를 접했을 당시의 착잡한 심정을 털어놓았다.
“동창인 이진희 편집국장의 부고가 실렸더라고요. 충격적이었어요. 그 기사를 접하고 다른 동창에게 재차 확인했죠. 무척 똑똑한 친구였는데... 너무나 안타까웠습니다.”
유 씨뿐 아니라 김철구 씨와 김효선 씨도 새소식하면 이진희 전 편집국장이 떠오른다고 입을 모았다. 이 전 편집국장은 30년간 새소식 편집자로 일하며 현재 새소식의 틀을 잡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 편집국장은 한국표준점자제정자문위원 활동으로 문화체육부장관상을 받았고, 장편소설을 쓴 문인이기도 했다.
독자마다 자신의 생각과 추억, 그리고 신념으로 새소식을 읽고 있었다. 김철구 씨는 점자를 읽지 않는 시각장애인계 문화가 안타깝다며 점자 읽기를 거듭 강조했다.
“저는 새소식 말고도 많은 점자책을 받아보고 있어요. 점자로 읽는 게 뭐든 가장 정확하게 알 수 있다고 믿으니까요. 소리로 듣는 것은 누군가 씹어서 입에 넣어주는 것이라면, 점자로 읽는 것은 스스로 씹어서 삼키는 거라고 할 수 있죠. 그런 의미에서 새소식 분량이 조금 더 늘었으면 해요(웃음).”
김효선 씨는 점자 간행물 중에 유일하게 새소식만 읽고 있다.
“저는 새소식만 읽어서, 이곳에서 정보와 지식을 다 얻고 있는 거나 다름없어요. 그래서 지금보다 더 많은 정보가 실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답니다.”
유동원 씨는 시각장애인의 특성을 고려해 새소식이 지방 통신원을 두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전국 시각장애인이 흩어져 만난 적은 없어도 시각장애인들끼리는 알음알음 알고 있어요. 새소식이 지방마다 통신원을 두고 그들의 소식을 전해준다면 멀리 떨어져 있어도 소식을 들을 수 있고, 더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저마다 다른 형태로 새소식 발전 방향을 제시하면서도, 새소식이 계속 발간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한결같았다. 김철구 씨는 “(새소식이) 문을 닫을 때까지 보겠다”고 말했다. 유동원 씨도 “다른 점자 간행물이 자꾸 바뀌고 쉽게 폐간되는데, 새소식만큼은 (내가) 죽을 때까지 계속되기를 바란다”고 힘줘 말했다.
김효선 씨는 새소식을 응원하는 말로 힘을 실어줬다.
“새소식 1000호를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일하시는 분들의 노고에 감사드리고요. 언제나 새소식을 기다리는 사람이 많다는 거 잊지 마시고, 더 열심히 새소식을 만들어 주세요. 마지막으로 새소식을 사랑한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네요(웃음).”
어떤 독자를 만나야 하나 고심하던 끝에 새소식 제1000호 제1차 이벤트 당선자 김철구(남, 62세, 서울 강남구) 씨, 김효선(여, 67세, 경기도 김포시) 씨, 유동원(남, 70세, 강원도 원주시) 씨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이벤트 당선과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공고 및 광고 참조)
이벤트 당선 사실을 알리는 전화를 걸면, 대부분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 무려 새소식 제60호(1979년 7월 15일 자)를 보내온 김철구 씨도 예외는 아니었다.
“분명히 저보다 오래된 새소식을 보내온 독자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제가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죠(웃음).”
새소식을 ‘에너지 산타’라고 정의한 김효선 씨도 그랬다. 김 씨는 오행시가 당선됐을 줄 알았다고 털어놓았다.
“이벤트 마지막 날 부랴부랴 보내느라 예상하지도 못했었거든요. 저는 처음에 당선됐다고 해서 오행시인줄 알았어요. 마침 새소식 795호가 있어서 사진도 보내려고 하다 못 보냈는데, 60호가 뽑혔다니 안 보내길 잘했네요(웃음)!”
김철구 씨와 유동원 씨는 점자새소식을 거의 초창기부터 읽기 시작했다. 읽게 된 동기도 거의 비슷했다. 함께 맹학교를 다니던 친구들의 권유에서였다. 김효선 씨는 2007년부터 구독하기 시작했고, 지인의 권유로 읽게 됐다.
구독 동기는 비슷해도 지금까지 점자새소식을 읽는 이유는 저마다 달랐다. 김철구 씨는 ‘모름지기 글은 점자로 읽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고, 김효선 씨는 ‘지식과 정보를 얻기 위해’라고 했다. 유동원 씨는 ‘시각장애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기 위해’라고 대답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점자 읽기를 즐긴다는 것이었다.
김철구 씨는 ‘시각장애인 위협한 성남시 복지콜 운전기사(제986호 2017년 10월 1일 자)’ 기사를 읽으며 분노를 금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우리의 발이 된다고 믿었던 복지콜 운전기사가 시각장애인을 오히려 위협했다고 하니 더욱 실망스럽고 참담했죠. 후속 조치는 더 처참하고요. 하지만 이런 기사처럼 새소식에 시각장애인계의 사건 사고 소식이 더 많이 실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김효선 씨는 새소식이 다른 시각장애인과의 공감대가 형성됐던 ‘지진 관련 매뉴얼, 하루빨리 대책이 시급하다(제963호 2015년 10월 15일 자)’ 기사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한다.
“내용 중에 창원에 사는 시각장애인이 ‘죽은 후에 발견될 때 지저분하면 안 되니까 깨끗한 옷을 갈아입었다’는 부분이 기억에 많이 남아요. 나도 그런 상황에서 그럴 것 같아 공감도 했고, 죽음을 떠올리니 왠지 서글퍼지기도 했어요.”
유동원 씨는 ‘이진희 전 점자새소식 편집부장 별세(2009년 11월 15일 자)’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유 씨는 기사를 접했을 당시의 착잡한 심정을 털어놓았다.
“동창인 이진희 편집국장의 부고가 실렸더라고요. 충격적이었어요. 그 기사를 접하고 다른 동창에게 재차 확인했죠. 무척 똑똑한 친구였는데... 너무나 안타까웠습니다.”
유 씨뿐 아니라 김철구 씨와 김효선 씨도 새소식하면 이진희 전 편집국장이 떠오른다고 입을 모았다. 이 전 편집국장은 30년간 새소식 편집자로 일하며 현재 새소식의 틀을 잡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 편집국장은 한국표준점자제정자문위원 활동으로 문화체육부장관상을 받았고, 장편소설을 쓴 문인이기도 했다.
독자마다 자신의 생각과 추억, 그리고 신념으로 새소식을 읽고 있었다. 김철구 씨는 점자를 읽지 않는 시각장애인계 문화가 안타깝다며 점자 읽기를 거듭 강조했다.
“저는 새소식 말고도 많은 점자책을 받아보고 있어요. 점자로 읽는 게 뭐든 가장 정확하게 알 수 있다고 믿으니까요. 소리로 듣는 것은 누군가 씹어서 입에 넣어주는 것이라면, 점자로 읽는 것은 스스로 씹어서 삼키는 거라고 할 수 있죠. 그런 의미에서 새소식 분량이 조금 더 늘었으면 해요(웃음).”
김효선 씨는 점자 간행물 중에 유일하게 새소식만 읽고 있다.
“저는 새소식만 읽어서, 이곳에서 정보와 지식을 다 얻고 있는 거나 다름없어요. 그래서 지금보다 더 많은 정보가 실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답니다.”
유동원 씨는 시각장애인의 특성을 고려해 새소식이 지방 통신원을 두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전국 시각장애인이 흩어져 만난 적은 없어도 시각장애인들끼리는 알음알음 알고 있어요. 새소식이 지방마다 통신원을 두고 그들의 소식을 전해준다면 멀리 떨어져 있어도 소식을 들을 수 있고, 더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저마다 다른 형태로 새소식 발전 방향을 제시하면서도, 새소식이 계속 발간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한결같았다. 김철구 씨는 “(새소식이) 문을 닫을 때까지 보겠다”고 말했다. 유동원 씨도 “다른 점자 간행물이 자꾸 바뀌고 쉽게 폐간되는데, 새소식만큼은 (내가) 죽을 때까지 계속되기를 바란다”고 힘줘 말했다.
김효선 씨는 새소식을 응원하는 말로 힘을 실어줬다.
“새소식 1000호를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일하시는 분들의 노고에 감사드리고요. 언제나 새소식을 기다리는 사람이 많다는 거 잊지 마시고, 더 열심히 새소식을 만들어 주세요. 마지막으로 새소식을 사랑한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네요(웃음).”
(2018. 5. 1. 제1000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