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올해의 장애인상 수상자, 김병호 과장
지난 4월 20일은 제38회를 맞은 ‘장애인의 날’이었다. 매년 이날이 되면 기념일의 취지에 맞는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그중 하나가 보건복지부에서 수여하는 ‘올해의 장애인상(이하 장애인상)’ 시상이다. 이번 장애인상은 한국척수장애인협회 차장 김소영 씨(여, 48세, 척수장애), 대구광역시 남구청 서기 황해원 씨(남, 53세, 청각장애), 그리고 삼성전자 사회공헌센터 과장 김병호 씨(남, 53세, 시각장애)가 선정됐다. 정보의 중요성이 부각된 정보화사회에서 활약 중인 김병호 과장을 만났다.
* 컴퓨터 읽어주는 선생님, 두드리자 열린 새로운 시작
‘컴퓨터 읽어주는 선생님’은 김병호 과장의 별명이다. 그는 본래 정안인이었다. 그러나 30대 이후 시력을 잃고, 1급 시각장애인이 되었다. 병명은 포도막염이다. 눈 안쪽, 포도막에 발생한 염증이 원인이었다. 발병 당시 병가와 휴가를 번갈아 사용하며 치료를 위해 3년간 노력했다. 하지만 결국 시력을 잃게 되었다. 시력 회복은 불가능하고, 현상 유지가 최선이고, 더 나빠질 공산도 높다는 의사의 진단을 들은 후였다. 그런 진단을 듣고 그는 장애를 받아들여야겠다고 결심했다.
“암담한 마음이 그렇게까지 크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치료 과정 중에 실명할 거라는 예고를 들었으니까요. 물론 충격이 아주 없지는 않았지만 말입니다.”
그는 시력을 잃은 후 적응을 위해 재활훈련에 참여하여 점자 읽기와 흰지팡이 보행 등을 배웠다. 물론 그 과정이 순탄했노라 말하지는 못한다. 장애를 인정했어도 그와는 별개로 시각장애인으로의 길은 힘든 것이 사실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는 현실과 가족들을 생각하며 최선을 다했고, 그런 과정 가운데 새로운 가능성을 보았다.
“사실 시각장애인들은 컴퓨터를 못하는 줄 알았어요. 그래서 ‘스크린리더’를 보고 놀랐죠. 이런 좋은 정보가 있었는데 왜 이제야 알았나 하고 말이에요.”
당시 시각장애인계에도 정보화 붐이 일고 있었다. 하지만 컴퓨터를 교육하는 기관은 많지 않았다. 그래서 삼성전자에 정보화교육센터 설립을 제안하게 되었다. 사업이 받아들여지리라는 확신은 없었다. 그러나 회사의 사회공헌 철학과 부합된다는 판단으로 삼성전자가 그의 제안을 채택했다. 드디어 1997년 4월, 정보화교육센터가 문을 열었다. 두드리면 열린다는 말처럼 컴퓨터 강사 김병호 씨의 첫걸음도 그렇게 열렸다.
“당시 조금 떨렸었던 것 같네요. 그 사업을 계기로 무언가 할 수 있는 일이 생겼으면 싶었고, 다시 복직을 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도 간절했죠.”
* 정보 접근성, 100%가 되는 그날을 위하여!
김 과장과 정보화교육센터는 함께 성장해 온 것과 다름없다. 초기의 오프라인 교육은 시각장애인들이 집에서도 컴퓨터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삼성 애니컴’ 사이트로 발전했고, 스마트폰이 대중화된 현재에 이르러서는 컴퓨터뿐 아니라 각종 IT 기기를 교육하는 기관으로 거듭났다. 그에 따라 김 과장의 업무 영역도 넓어졌다. 컴퓨터 문제 상담과 교육 콘텐츠 개발은 기본이다.
“삼성제품에 관한 접근성 설명회도 열고요. 매년 1회 실시하는 삼성 애니컴 페스티벌 정보검색대회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일인다역을 하고 있으니 하루 24시간이 부족하다. 그 바람에 이용자 욕구에 제때 답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교재가 있었으면 한다는 요청, 동영상 강의를 원하는 약시 이용자 등등. 시각장애인들의 욕구에 빨리 답하지 못할 때가 제일 힘들다. 그런 난관에도 불구하고 보람은 크다.
“정보화교육센터를 통해 컴퓨터 실력이 좋아졌다는 전화가 오는 일이 있어요. 교육을 이수하고 컴퓨터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는 소식이 오기도 하고요. 그때가 가장 기쁩니다.”
최근에는 제품 품질 향상 및 접근성 개선도 즐거움이 되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지난겨울부터 점검했던 음성인식 세탁기 ‘플렉스워시’와 2014년 출시된 스마트폰 ‘갤럭시 코어 어드밴스’이다.
“앞선 제품보다 기능 향상이 제법 있었거든요. 옛날에 비해 정보는 증가한 세상이죠. 하지만 접근성은 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았습니다. 시각장애인들뿐 아니라 개발자들도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하나가 나왔으면, 차츰 다른 제품에도 적용이 될 테니까요.”
그가 생각하는 ‘정보화’는 컴퓨터와 스마트폰, IT 기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일상의 모든 것이 정보로 연결된다. 그렇기에 퇴근 후에도 점자정보단말기로 매뉴얼을 읽으며 접근성 향상에 매진했고, 그런 수고가 있었기에 좋은 제품이 출시될 수 있었다. 그리고 시각장애인이 느낄 정보의 격차도 낮출 수 있었다. 지난 20여 년간의 정보화교육의 헌신, 꾸준한 노력이 있었기에 그의 ‘장애인상’ 수상은 놀랍기보다 자연스럽게 여겨진다.
“이 모든 걸 저 혼자 한 건 아닙니다. 도와주신 분들이 계셔서 가능했죠. ‘장애인상’은 앞으로 더 잘하라는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목표는 정보화, 그리고 정보 접근성을 높이는 것이다. 그와 같은 노력이 있다면 정보 격차 0%도 마냥 꿈은 아니리라.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김병호 과장의 목표를 응원한다.
* 컴퓨터 읽어주는 선생님, 두드리자 열린 새로운 시작
‘컴퓨터 읽어주는 선생님’은 김병호 과장의 별명이다. 그는 본래 정안인이었다. 그러나 30대 이후 시력을 잃고, 1급 시각장애인이 되었다. 병명은 포도막염이다. 눈 안쪽, 포도막에 발생한 염증이 원인이었다. 발병 당시 병가와 휴가를 번갈아 사용하며 치료를 위해 3년간 노력했다. 하지만 결국 시력을 잃게 되었다. 시력 회복은 불가능하고, 현상 유지가 최선이고, 더 나빠질 공산도 높다는 의사의 진단을 들은 후였다. 그런 진단을 듣고 그는 장애를 받아들여야겠다고 결심했다.
“암담한 마음이 그렇게까지 크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치료 과정 중에 실명할 거라는 예고를 들었으니까요. 물론 충격이 아주 없지는 않았지만 말입니다.”
그는 시력을 잃은 후 적응을 위해 재활훈련에 참여하여 점자 읽기와 흰지팡이 보행 등을 배웠다. 물론 그 과정이 순탄했노라 말하지는 못한다. 장애를 인정했어도 그와는 별개로 시각장애인으로의 길은 힘든 것이 사실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는 현실과 가족들을 생각하며 최선을 다했고, 그런 과정 가운데 새로운 가능성을 보았다.
“사실 시각장애인들은 컴퓨터를 못하는 줄 알았어요. 그래서 ‘스크린리더’를 보고 놀랐죠. 이런 좋은 정보가 있었는데 왜 이제야 알았나 하고 말이에요.”
당시 시각장애인계에도 정보화 붐이 일고 있었다. 하지만 컴퓨터를 교육하는 기관은 많지 않았다. 그래서 삼성전자에 정보화교육센터 설립을 제안하게 되었다. 사업이 받아들여지리라는 확신은 없었다. 그러나 회사의 사회공헌 철학과 부합된다는 판단으로 삼성전자가 그의 제안을 채택했다. 드디어 1997년 4월, 정보화교육센터가 문을 열었다. 두드리면 열린다는 말처럼 컴퓨터 강사 김병호 씨의 첫걸음도 그렇게 열렸다.
“당시 조금 떨렸었던 것 같네요. 그 사업을 계기로 무언가 할 수 있는 일이 생겼으면 싶었고, 다시 복직을 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도 간절했죠.”
* 정보 접근성, 100%가 되는 그날을 위하여!
김 과장과 정보화교육센터는 함께 성장해 온 것과 다름없다. 초기의 오프라인 교육은 시각장애인들이 집에서도 컴퓨터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삼성 애니컴’ 사이트로 발전했고, 스마트폰이 대중화된 현재에 이르러서는 컴퓨터뿐 아니라 각종 IT 기기를 교육하는 기관으로 거듭났다. 그에 따라 김 과장의 업무 영역도 넓어졌다. 컴퓨터 문제 상담과 교육 콘텐츠 개발은 기본이다.
“삼성제품에 관한 접근성 설명회도 열고요. 매년 1회 실시하는 삼성 애니컴 페스티벌 정보검색대회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일인다역을 하고 있으니 하루 24시간이 부족하다. 그 바람에 이용자 욕구에 제때 답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교재가 있었으면 한다는 요청, 동영상 강의를 원하는 약시 이용자 등등. 시각장애인들의 욕구에 빨리 답하지 못할 때가 제일 힘들다. 그런 난관에도 불구하고 보람은 크다.
“정보화교육센터를 통해 컴퓨터 실력이 좋아졌다는 전화가 오는 일이 있어요. 교육을 이수하고 컴퓨터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는 소식이 오기도 하고요. 그때가 가장 기쁩니다.”
최근에는 제품 품질 향상 및 접근성 개선도 즐거움이 되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지난겨울부터 점검했던 음성인식 세탁기 ‘플렉스워시’와 2014년 출시된 스마트폰 ‘갤럭시 코어 어드밴스’이다.
“앞선 제품보다 기능 향상이 제법 있었거든요. 옛날에 비해 정보는 증가한 세상이죠. 하지만 접근성은 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았습니다. 시각장애인들뿐 아니라 개발자들도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하나가 나왔으면, 차츰 다른 제품에도 적용이 될 테니까요.”
그가 생각하는 ‘정보화’는 컴퓨터와 스마트폰, IT 기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일상의 모든 것이 정보로 연결된다. 그렇기에 퇴근 후에도 점자정보단말기로 매뉴얼을 읽으며 접근성 향상에 매진했고, 그런 수고가 있었기에 좋은 제품이 출시될 수 있었다. 그리고 시각장애인이 느낄 정보의 격차도 낮출 수 있었다. 지난 20여 년간의 정보화교육의 헌신, 꾸준한 노력이 있었기에 그의 ‘장애인상’ 수상은 놀랍기보다 자연스럽게 여겨진다.
“이 모든 걸 저 혼자 한 건 아닙니다. 도와주신 분들이 계셔서 가능했죠. ‘장애인상’은 앞으로 더 잘하라는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목표는 정보화, 그리고 정보 접근성을 높이는 것이다. 그와 같은 노력이 있다면 정보 격차 0%도 마냥 꿈은 아니리라.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김병호 과장의 목표를 응원한다.
(2018. 5. 15. 제1001호)


